2010년 2월 21일 일요일

2월 셋째주일 Q.T. 메세지


제 목 : 주님께 무엇을 부어 드릴 것인가?
본 문 : 요한복음 121-6

     마르다의 헌신

성경은 오늘, 유월절 6일 전에 있었던 사건을 말씀합니다. 유월절 6일 전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6일 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를 방문하셨습니다. 이곳에는 얼마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4에 보면 예수님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때, 한 여인이 값진 향유룰 가지고 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으로 가지 않고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문둥병에서 고침받았던 시몬,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 그들을 치료하시고, 다시 살리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축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2을 봅니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나사로의 누이, 마르다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내 형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베다니에 다시 오시다니 마르다는 얼마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했을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마르다야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예수님, 내가 믿습니다나사로의 무덤을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셨던 주님의 그 모습 주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내 헌신의 마음입니다마르다는 새벽 일찍 일어나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잔치는 저녁식사입니다. 마르다는 하루종일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을 드렸습니다.

     마리아의 헌신

그런데 이날, 놀라운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3입니다.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마리아가 소비한 향유의 값은 300데나리온이었습니다.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입니다. 300데나리온은 노동자가 약 1년 동안 벌어야 하는 큰 액수입니다. 그 전날 밤, 마리아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이 이곳에 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마리아의 마음속에 그동안 모아 두었던 순전한 나드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마리아는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앞에 놓고, 하나님, 이 옥합속에 있는 향유는 나의 전부입니다. 주님 받아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향유를 주님 발앞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을 주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집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주인이 손님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손님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이 일은 엄청난 일입니다. 여자가 머리를 푼다 이 일은 유대풍습에 치욕적인 일입니다. 더군다나 머리를 풀어서 발을 닦는다  이건 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는 말할 수 없이 낮아졌습니다. 주님의 발을 닦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을 겁니다. 비웃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주님앞에 더이상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낮아졌습니다. 주님, 나좀 알아 주세요. 나 이만큼 드렸습니다. 나 이만큼 했습니다나 좀 알아달라는 세상입니다. 내가 한 일 인정받고 싶은 것이 우리들 마음입니다. 알아 주지 않으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시험에 드는 것이 우리들 모습니다.

마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오라비를 죽음에서 구해 내신 주님, 그 주님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 헌신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헌신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마리아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자신이 드렸던 그 헌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비했다는 것,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최초로 예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헌신의 열매입니다. 수고의 열매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얼마나 그 자리가 영광스러웠을까? 얼마나 그 자리가 존귀했을까?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한 여인의 헌신이 온 집을 향기나는 집으로 만들었습니다. 내 집에 마리아의 헌신이 있다면, 내 교회에 마리아의 헌신이 있다면, 아무도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할찌라도, 내 모습 이대로, 내 삶을 그대로 주님 받아 주옵소서 드리는 종들이 있다면, 예수의 향기가 그 자리에 가득할 줄 믿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그런데 이것 보세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제자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댜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4,5)마가복음 144절엔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마태복음 268절엔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사람들은, 제자들은 화가 났습니다. 왜 그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중, 예수님의 12제자중 한사람이었던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30에 팔아 넘길 사람 가룟유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5)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하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는 것 필요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룟유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럴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겉과 속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6)이렇게 말함은유다의 속셈이 있다는 겁니다. 겉으로 내놓은 말과 속으로 가진 마음이 다르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가난한 자를 돌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겉으론 선한 척합니다. 겉으론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척합니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없어도 있는척, 몰라도 아는척, 안착해도 착한척 용기 있는척, 잘난척, 안그런척, 믿음있는척 우린  그런척하는 문화를 버려야 합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교회학교 아이 철수에게 물었습니다. 철수야, 여리고성은 누가 무너뜨렸지?’ … ‘제가 안그랬는데요’ … ‘아니, 철수야,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 ‘목사님, 정말 제가 안그랬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옆에 있는 선생님이 목사님에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 목사님, 철수는 정직한 아이입니다. 철수가 안했다면 정말 안했을겁니다목사님은 황당했습니다. 마침 교육부 담당 장로님 지나가셨습니다. 장로님, 큰일났습니다. 철수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는지 모른다네요?’ … ‘목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교회예산으로 고쳐주면 됩니다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죄인의 모습 이대로 드리면 어떻습니까? … 찬송가 349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 가신주 날 받으옵소서눈이 작으면 어떻습니까? 작으면 작은대로, 가진 것이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믿음이 연약하면 어떻습니까?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주님앞에 내 모습 이대로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드렸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30에 팔았습니다. 한사람은 드렸고, 한사람은 팔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속에서 너무나 다른 두사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두가지 모습이 내안에 고스란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유다, 만약 베드로가 이 모습을 목격했다면, 가룟유다의 목을 잡고 너는 인간도 아니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것도 베드로입니다. 유다의 나쁜 인간성, 죄성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주님을 위해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린, 마리아의 헌신, 마리아의 믿음도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나는 얼마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품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올 한해, 내 믿음의 헌신을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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